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은 대개 순수하고 애틋하게 그려진다. 이 애틋함 때문인지 (혹은 스토리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쉽기 때문인지)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는 로맨스물의 단골 메뉴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정말로 그렇게 좋을까? 대부분의 사람에게 첫사랑이 애틋한 건, 비교할 대상이 하나도 없는 가장 인상깊은 사랑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우리 뇌는 지나간 일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으니 ‘첫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간질간질한 수식어들이 떠오를 법도 하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지갑 속의 지폐를 생각해 보자. 내 지갑 안에 있는 지폐의 종류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천원, 오천원, 만원, 오만원짜리다. 하지만 2년 전에 지갑에 있던 만원짜리 지폐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지갑 안에 있는 현금의 양이 비슷할지는 몰라도 지폐 자체는 들어오고 나가며 바뀐다.
이와 비슷하게 몸 속의 분자들도 약 2년 안에 다른 분자로 교체된다. 하나의 분자가 몸 밖으로 나가고 다른 분자가 들어올 때는, 이전 분자가 있던 위치와 정확하게 같은 위치에 새 분자가 들어가지는 않는다. 같거나 비슷한 위치에 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니 키가 크기도 하고, 근육이 늘기도 하고, 불행히도 근육이 지방으로 바뀌기도 한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물질로 이뤄진 다른 존재인 셈이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된 나에게 누군가의 첫사랑의 기억이 있고, 지금의 내가 그 첫사랑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뇌의 구조와 반응 특성도 달라진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전전두엽으로 뻗어가는 과정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시작되어 25세 이후까지 계속된다. 억제성 신경세포는 10세부터 20세 사이에 가장 급격하게 성숙된다. 감정 조절과 미래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은 40대 초반까지도 발달을 계속한다.
나이에 따라 뇌의 특색이 다르기에, 연령대별로 느끼고 생각하는 패턴도, 심리적인 고충의 종류도 변해간다. 지금의 나는 첫사랑 무렵의 내 뇌가 느끼고 생각했던 방식을 다시 경험할 수 없다. 대신에 그 무렵의 내가 상상조차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더 흐르면, 지금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겠지. 인생의 모든 시기가 평생에 다시 오지 않을 유일한 순간인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유지태의 대사가 한동안 유행했었다. 그 때는 그 말이 참 멋있게 들렸는데, 생물학을 배우고, 뇌과학을 공부한 뒤의 나는 이렇게 묻는다. 아니, 사랑의 주체(사람)가 변하는데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해? 그 때의 내 뇌가 세상을 경험하던 방식으로 나는 그 때의 너를 사랑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뇌는 변하고, 그 시절의 나의 뇌와 그 시절의 너의 뇌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세월이 가면서 변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상태로 변해가는 내가 좋다. 너와 함께 변해가는 나와, 나와 함께 변해가는 너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네가 좋다. 그게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