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가꾸기 보다 더 중요한 '이것'
우리는 살면서 남과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 비교를 통해 자신을 평가하려는 경향도 있다. 이는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텔레비전은 그것을 가속화했고 피지의 경우 섬 안에만 국한되었던 비교와 경쟁이 텔레비전을 통해 외국 사람들 특히 광고나 영화에 나오는 예쁘고 날씬한 모델, 연예인들과의 비교로 확대되었다.
비교와 경쟁 혹은 노력은 인류를 발전시켜온 동인이기도 하다. 남보다 잘 먹고 싶고, 남보다 좋은 것을 가지고 싶고, 남보다 더 예뻐지고 싶고, 남보다 더 아름다운 배우자와 함께 인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욕망은 본능에 가깝다. 동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며 수컷 공작의 꼬리가 화려할수록 암컷과 교미할 기회를 잡기가 더 쉬운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런 비교와 경쟁이 지역 사회 내의 좁은 울타리이던 시대를 벗어나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처럼 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경쟁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결코 유일한 일인자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한다. 그것이 부든, 미모든 말이다.
음식물을 토하던 피지 소녀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런 소녀들의 비율은 지금은 더 높아졌는지 알지는 못한다. 지금은 텔레비전을 통한 비교 평가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로 바뀌면서 더 광범위한 비교가 가능하게 바뀌어가고 있다. 따라서 추측건대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보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좋은 물건이나 예쁜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런 것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핌감에 우울해지고 의욕이 저하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통계 자료가 말해준다. 연애 실패의 원인을 외모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혹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외모 혹은 배우자의 외모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는 사연들도 늘어간다.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은 거의 없다. 부든 아름다움이든 상대적이다. 따라서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서 부자가 되기도 하고 가난뱅이가 되기도 하며 잘 생긴 사람이 되기도 하고 못생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어떤 쪽의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는 자신이 결정한다. 치열한 무한 경쟁의 세상과 경쟁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려 노력하면서 사는 세상. 젊은 시절은 소중하며 화려하다. 그러나 길지 않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을 공기나 물처럼 무한정으로 제공되고 더군다나 돈도 안 드는 무료의 재원으로 생각한다. 이는 큰 착각이다. 공기와 물도 특히 숨 쉴만한 공기와 마실만한 깨끗한 물은 무한정이 아니며, 더더군다나 무료가 아니다. 뿌연 황사가 뒤덮는 봄철의 거리를 걸어 본 사람이나 겨울 가뭄으로 고생하는 농부의 하소연을 들어본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시간은 각자 다르지만 80여 년 혹은 지금 세대의 경우 조금 늘어나서 90여 년 정도 될 것이다. 그중 가장 많은 시간을 자면서 보낸다. 어릴 때 자신의 의지대로 보내지 못하고 학습을 위해 보낸 20여 년의 시간과 나이가 들어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기간을 빼고 나면 본인의 의지대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실제 기간은 대폭 줄어든다. 그 줄어든 기간 중에서도 20대나 30대의 기간은 정말 꽃다운 짧은 시간이다. 마음껏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외모의 잣대로 인해 사랑을 폄훼하거나 외모 자신감 부족으로 상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다.
내가 이렇게 시간의 중요성, 특히 젊은 시절의 짧음을 말하는 이유는 그 시간을 잘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소중한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외모와 몸매를 가꾸는 것에 너무 지나치게 투자하며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으며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자기 자신에게 그 선택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