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VS졸혼
법적인 혼인의 해소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은 이른바 '졸혼'을 하고 그냥 그대로 지내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졸혼'이란, 법적인 혼인 관계는 그대로 둔 채, 서로 별거하며 사실상 이혼한 것처럼 독립적으로 살아가기로 약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기약 없는 Cooling-off'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는 둘만의 약속이지요. (물론 이러한 약속을 어기고 다시 예전처럼 부부로 돌아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혼한 경우보다는 수월하게 다시 ‘뜻을 합쳐볼’ 여지가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이혼’ 대신 ‘졸혼’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단순히 (재산을 분할하고 법원을 방문하는 등 법적인 절차를 거치는 것 등이) ‘귀찮아서’인 경우도 많고, 남들 눈을 신경 쓰느라 이혼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나 부모님들이 극구 반대해서 그런 경우도 많지요. 어떠한 ‘모호함’도 남겨 놓기를 극도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졸혼’ 상태를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정돈되지 않은 방에서 계속 생활하면 잠시도 못 견디는 분들처럼요. 이분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이혼’이든 ‘졸혼’이든 적절한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졸혼은 법적으로 인정된 제도가 아니라, ‘사실상 별거’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재산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졸혼을 하더라도, 재산분할 등 재산관계를 법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졸혼을 하기로 하면서 부부 재산 대부분을 일방의 명의로 둔 채 그 일방으로부터 생활비만 받기로 가볍게 약속한다면, 나중에 생활비를 지급받지 못할 경우, 이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게 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지요. 아무리 귀찮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결과가 도출되도록 방치해서는 곤란합니다.
졸혼을 통한 별거 기간 동안 일방이 상의 없이 재산을 처분하면, 추후 오랜 별거 후 이혼을 하게 될 때 재산분할 상의 불이익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재판상 이혼에서의 재산분할과 관련하여, 분할의 대상이 되는 ‘재산’과 액수 산정의 기준시기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조금 풀어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대법원 판례를 원칙적으로 위 기준시기를 ‘사실심 변론종결시’로 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1심 또는 2심 재판의 법정 변론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분할대상 재산’과 ‘액수 산정’의 기준점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원은 재판이 거의 마무리될 때의 재산 상황을 고려하여 부부의 재산분할을 명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졸혼과 같은 상황으로 인하여 장기간의 별거 기간이 발생하면, 위와 같은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즉, 졸혼 등으로 인한 별거 기간 이후에는 양 당사자의 재산 상황이 훨씬 큰 폭으로 변동될 유인이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졸혼 이후에는 일방이 악의적으로 재산을 탕진하려는 시도가 종종 발생합니다. 따라서 우리 법원은 졸혼 등으로 인하여 장기간 별거가 있었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별거를 시작한 시점’ 내지 ‘혼인관계가 파탄된 시점’으로 기준점을 앞당겨 재산분할을 명하게 되지요.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한 지극히 합리적인 조율입니다.
어느 정도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관계라면, 얼른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의 지론입니다. 이러한 제 생각은 비단 연인 관계, 부부 관계에 관한 입장이 아닙니다. 친구 관계는 물론, 회사에서의 인간관계, 동아리 등 다른 사회 집단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은 곁에 있는 죄 없는 사람조차 지치게 합니다. 협업 내용도 비효율적으로 흘러가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죽은 뒤 얼마나 빨리 잊히는지를 안다면, 절대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며 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인하여 불필요한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무척 짧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다 깊이 좋아하고 사랑하기에도 인생은 터무니없이 짧은 것이지요.